스코틀랜드 , 유럽을 석권한 나카무라 슌스케 , 셀틱에서의 모험 |
2007 년 2 월 20 일 CL 결승 토너먼트 1 회전 AC 밀란 ( 이탈리아 ) 1 차전 . 나카무라 슌스케와 피를로가 세차게 볼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다 .
북쪽 나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플레이하는 한명의 일본인선수가 있다. 일본대표팀의 10번을 지닌 나카무라 슌스케가 바로 그 사람이다. 2002년 여름에 일본을 뛰처 나온 나카무라는 이탈리아 세리에A의 레지나에서 3시즌을 보냈다. 높은 기술과 프리 킥으로 이탈리아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 후 2005년 여름에 스코틀랜드의 셀틱으로 이적한 후 1년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
2년째로 되는 2006~2007년은 나카무라와 셀틱에 있어서 특별한 시즌이 되었다. 클럽은 2연파를 달성하였고 챔피언스 리그(CL)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올랐다. 또한 스코티슈FA컵까지 획득하여 실로 더 이상 없는 좋은 한해를 보냈던 것이다. 그가운데서도 나카무라는 많은 특점과 어시스트로 팀의 중심이 되는 활약을 하였고 시즌이 끝난 뒤에는 그에게 수많은 상들이 수여되었다. 명실공히 팀과 리그의 주인공이 된 시즌이 었다.
나카무라에게 있어서 이 시즌의 가장 큰 목표는 CL에 출전하는 것이었다. 2년째를 앞두고 유럽의 여러 클럽에서 나카무라를 획득하는데 큰 관심을 가졌으나 나카무라는 셀틱에서 CL에 출전할것을 결심하고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이처럼 그리워 했던 CL의 무대에서 나카무라는 첫 경기부터 결과를 내었다. 첫 경기인 올드트랙포드에서 진행 된 맨U전에서 프리 킥을 골로 연결시킨 다음 코펜하겐, 벰피가전에서는 승리를 이루는 주역으로 대활약을 하였다. 그리하여 2006년 11월21일 홈에 진행된 맨U전에서 나카무라는 셀틱의 역사에 남게 될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30m가까운 거리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켜 1-0으로 셀틱을 승리로 이끌었다.
“거리는 멀었으나 골 마우스속에 넣을 자신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승리가 결승 토너먼트 출전에 이어져서 아주 기쁘다”
이 승리에 의해 셀틱은 1경기를 남기고 그룹 리그 돌파를 결정지었다. 경기 후 얼마 동안 셀틱 파크에는 “나카무라”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때를 같이하여 셀틱은 리그전에서도 독주 태세에 들어 섰다. 라이벌인 랜저스는 헤매였고 하쯔도 팀 내부의 문제에 인해 상태가 안 좋았다. 리그전에서 나카무라는 생애2번째로 해트 트릭을 달성한 댄디전이나 리그 년간 최우수 골로 뽑힌 루푸 슛으로 스코틀랜드의 관객들을 매혹하고 있었다.
해가 바뀌고 2007년에 들어서면서도 셀틱은 리그전을 독주하였다. 이제는 CL 16강에서 대전하는 밀란(이탈리아)전에 포커스만 했다. 그 밀란전에서 셀틱은 홈에서의 1차전을 0-0으로 끝내고 어웨이에서 진행 된 2차전도 0-0으로 끝냈다. 결말은 마지막 연장전에 미루어지게 되었다. 밀란의 안첼로티감독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나카무라”라고 말했듯이 나카무라를 암브로지니나 양쿨롭스키들이 격렬하게 마크를 하고 쉽게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시합은 카카의 개인기에 의해 밀란이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훗날에 우승하게 될 밀란을 상대로 2경기를 0-0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나카무라에게 있어서 큰 자신감으로 되었다.
“ 시합에는 졌지만 2 경기 다 (90 분간으로는 ) 0-0 이었다 . 여기서 해 온 것들은 틀림없었다 . 앞으로는 사고를 전환해서 리그전에 집중할것이다 .”
CL 에서의 격투가 끝나고 남은 것은 언제 리그전에서 우승할것인가 그 뿐이 었다 . 그러나 CL 의 밀란전 이후 마음이 해이해진 탓으로 셀틱의 퍼포먼스는 나빠졌다 . 하위의 팀을 상대로 비기거나 지는 일이 계속 되어 서포터들의 불만은 쌓여졌다 .
4 월 22 일의 킬마아녹전도 마찬가지로 비김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되었었다 . 후반 로스타임에 들어가 스코아는 1-1. “ 또 다시 다음 경기에 미루게 되는건가 ….” 상대팀의 홈까지 응원하러 온 서포터들의 발길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나카무라가 페널티 박스 밖에서 넘어져 프리킥을 얻었다 . 스타디움에는 기대의 환성이 울려 퍼졌으나 스트라칸감독은 그것이 우승을 결정 짓는 극적인 득점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왜냐면 너무 잘 된거 아냐 ? 그 시간대에 결정적인 일을 한다니 .. 나카무라는 이제까지 여러번 프리킥을 성공 시켜왔지만 설마 이번에는 그러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 그러나 그는 그 일을 해냈다 . 천재다 ,”
4 월 29 일 하쯔전이 끝난 뒤에 진행 된 우승 세리머니에서 나카무라가 트로피를 손에 들어 웃음을 띄운다 .
지휘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나카무라를 찬양하였다 . 나카무라는 프리킥을 골문 왼쪽 구석에 성 후 드물게도 유니폼을 벗고 그것을 휘두르면서 셀틱 서포터들이 차지한 골문 뒤에로 뛰어 들어갔다 . 이것은 그가 “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 ” 이라고 하는 골후의 퍼포먼스였다 .
“2 연패를 달성할 수 있어서 기쁘다 . 올해는 CL 에서도 16 강이 될 수 있었고 아주 좋은 시즌이었다 . 그러나 다음 해에는 경계가 더 심해질 것이니 더욱 힘겨워 질것이다 . 더더욱 힘을 키워서 팀에 공헌할것이다 .”
킬마아녹전 이후 나카무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 그리하여 나카무라는 그 날 밤 글래스고 시내에서 진행 된 선수협회 주최의 파티에서 연간 MVP 에 선정되어 실로 이번 시즌의 주인공이 되었다 .
“ 혼자 힘으로는 이 상을 쟁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 상은 팀 동료와 감독님 , 그리고 가족들에게 바치고 싶다 .”
까만 색 양복를 입은 나카무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 각 클럽에서 모인 선수들의 박수는 멎을줄을 몰랐다 . 2 년째에 거머 쥔 최대의 영광 . 이렇게 하여 나카무라가 유럽에 진출한 이후 보낸 최고의 시즌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
나카무라는 현지에서 “ 해 뜨는 나라에서 온 슌스케 ” 라고 불리울 때가 있다 . 유럽에서는 동아시아를 “ 태양이 솟아 오르는 나라들 ” 이라고 표현하고 그들은 여기에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 그러한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극동에서 온 한명의 일본인의 활약 . 지금 그 플레이에 스코틀랜드뿐만이 아니라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주목하고 있다 .
글 = 토요후쿠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