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자랑”박지성, 그의 가슴에 담아둔 또 한번의 도약 |
4월 2일, 챔피언스 리그 준준결승전인 로마 対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 박지성(오른쪽)의 어시스트를 받은 스트라이커 루니가 골을 성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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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챔피언즈 리그 결승 피치(pitch=경기장)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의 J리그에서 프로로서의 캐리어를 시작한 후, 네덜란드에서 이적한 잉글랜드의 축구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된 박지성(朴智星). 이제는 “아시아의 자랑”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PK전 끝에 첼시를 끌어내리고 9년만에 유럽의 왕좌에 오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엔트리 멤버 리스트에 그의 이름은 오르지 않았으며 이 사실은 한국의 축구팬들을 크게 낙담시켰다.
무엇보다 지금껏 아시아 선수가 UEFA챔피언즈 리그 결승무대에 섰던 전례가 없었으며 만일 출장하게 된다면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에 있어서 최초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었던 만큼 아쉬움은 더욱 컸다. 더구나 박지성은 지금까지 AS로마와의 준준결승과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 등, 4 경기 연속으로 챔피언즈 리그에 풀(full)로 출장하면서 중요한 경기에서는 반드시 기용되었던 지금까지의 흐름으로 보자면 당연히 결승전에서도 출장할 것이라고 전망되었던 때문에 한국 팬들의 낙담은 실로 대단했으며, 현지의 영국 매스컴들조차도 「박지성의 결승전 결장으로 아시아 축구팬들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보도했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박지성 본인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불평불만도 나오지 않았다. 평상시부터 개인적인 욕심보다도 팀의 우승을 최우선으로 하고 싶다고 말해 온 그는 「팀이 리그 연패와 챔피언즈 리그 재패라고 하는 2관왕을 달성한 것에 만족한다」고 기뻐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이번 시즌은 장기간에 걸친 부상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이번 시즌을 회고했다.
실제로 이번 시즌(2007-2008 시즌)은 박지성에게 자신의 진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시즌이기도 했다. 네덜란드・PSV 아이트호벤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한 것이 2005년의 7월. 프리미어 리그 1년째인 2005-2006 시즌은 공식경기 34회 출장에 1득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2년째인 2006-2007 시즌에서는 초반에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쳐 99일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으며, 3월에는 오른쪽 무릎을 다쳐 4월에 긴급수술을 감행했다. 박지성은 팀이 4시즌만에 프리미어 리그 왕좌를 탈환하던 감격의 순간을 목발을 짚은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으며, 그 후에도 재활치료에 여념없는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가 겨우 피치로 돌아온 것은 2007년 12월 26일의 선더랜드 전. 그러나 9개월간의 공백은 컸으니, 라이언 긱스(웨일즈 대표)와 새로 가입한 나니(포루투갈 대표)와의 포지션 경쟁도 있어서 복귀 직후는 교체투입이나 벤치신세는 커녕 엔트리 멤버에 조차도 들지 못한 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날도 적지 않았다. 그로 인해 일부에서는 「박지성 불필요론」이 떠올랐으며, 한국팬들 사이에서도 「출장기회를 얻기 위해서 맨체스터를 떠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불언실행(말없이 실행에 옮긴다)을 신조로 삼는 이 젊은이는 묵묵히 땀을 흘리며 강한 인내심로 계속 찬스를 기다렸다.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 선발인지 교체투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에 따라서 팀의 전술은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술적인 이유에서 다른 선수가 기용되는 경우도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훌륭한 선수가 많지만 지금부터 확실히 준비해두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다」
그리고 3월 1일, 풀햄 전에서 풀로 출장한 그는 복귀전 최조의 골을 기록했으며, 계속해서 4월부터 치러진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준준결승인 対 AS로마(이탈리아)전, 준결승인 対 바르셀로나(스페인)전 등, 4경기 연속으로 풀로 출장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5월 11일의 최종 라운드인 위간 전에서 선발 출장하여 팀의 2시즌 연속 프리미어 리그 재패에 공헌했다.
그의 공헌도는 숫자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11승 0패 1무, 2008년 들어 박지성이 출장한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패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두 번째 경기에서는 지치지않는 그의 풍부한 운동량이 데이터로 명백히 증명되었다. 동 경기에 출장한 양 팀의 선수의 주행거리를 측정한 UEFA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박지성이 90분간 뛴 총주행거리는 11.962km. 이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평균주파거리(11.022km)보다 길고, 상대팀인 바르셀로나 선수들도 능가하는 수치였다.
더구나 단순히 운동량만 많은 것이 아니다. 그는 피치 전체를 에너제틱하게 누비고 다니며 공수의 양방면에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만들어간다. 민첩하고 예리한 움직임으로 빈 공간을 찾아서 뛰어들며, 오프 더 볼(off the ball)일 때도 스스로가 미끼가 되어 동료선수를 위해서 공간을 만들어낸다. 스피드가 월등히 빠르다거나 화려한 테크닉을 무기로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풍부한 운동력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질 높은 움직임”으로 박지성은 여러번 찬스를 만들었으며, 여러번 위기의 싹을 잘라버렸다. 이러한 그의 활동에 대해 현지 매스컴도 극찬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체력」(『맨체스터 이브닝뉴스』)、「이미 박지성은 짐을 끄는 말이 아니라 기품이 넘치는 혈통 좋은 명마가 되었다.」(『데일리 메일』)、「볼을 다루는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는 아니나 피치의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누비며 서포터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더 썬』)고 평가했다. 박지성은 몸을 아까지 않는 운동량과 질 높은 움직임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든 것이다. 챔피언스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걸린 큰 경기에 기용된 것도 팀이 그에게 거는 신뢰의 증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런 만큼 UEFA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서지 못한 사실이 안타까기 그지없다. 「오웬 하그리브스의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박지성을 쉬게 할 수 밖에 없었다」(알렉스 퍼거슨 감독)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는 하나, 벤치에 앉아있을 수도 없게 만든 그의 처사를 한국 매스컴은 「무정」「무자비」라고 보도했다. 한편 시즌 경기를 끝내고 모국으로 돌아 온 박지성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서지 못한 한을 가슴에 묻으며 또 한번의 도약을 맹세했다. 「선수로서 결승 무대에 서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감독에게도 그것은 무척 어려운 판단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또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며 찬스는 반드시 온다고 믿고 있다. 그때는 반드시 피치에 설 수 있도록 지금부터 계속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항상 겸손하고 조용한 그답게 모범답안같은 코멘트지만, 그 말의 한구석에서 느껴지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지향하는 도전자의 기운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하는 세계 최고팀에 몸 담은 이상 박지성에게는 다음 시즌에서도 어김없이 치열한 레귤러 경쟁이 예상되는데 그는 확실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다른 선수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피치에 서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쏟아부어서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신뢰를 얻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라고 불리기는 아직 멀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거라고 믿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다.」
현재는 모국인 한국에서 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축구팬의 주목이 집중된 선수가 되어가고 있는 박지성. “아시아의 자랑”에서 “월드스타”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ㅠ
<프로필>
미드필더(MF) 박지성(PARK Ji Sung)은1981년 2월 25일, 한국 출생. 대학 졸업 후, 모국의 K리그가 아닌 일본(J리그)의 교토퍼플상가(현재 교토상가 FC)에 입단하며 2000년에 프로데뷔. 곧 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2002년에 네덜란드의 명문 PSV에 이적, 2005년에는 잉글랜드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현재까지 활동 중. 한국 대표팀의 중심선수로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 2006년 독일 월드컵 대회에 출장. 175센티, 72킬로.
글 = SHIN Mu Koeng/Pitch commnications